일상

오랜만

무등산수박 2017. 3. 29. 00:20

재작년 그러니까 2015년 11월 말에 카페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좋았다. 좋은 공간과 좋은 사람들 덕분에 하루하루가 참 즐거웠다.

카페 이전으로 인해 수습기간과 공사하는 동안 열심히 일했지만 한달 반 정도의 임금을 받지 못했다. 그냥 재밌었고 내가 하고싶었던 거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2016년 1월 즈음 정식 오픈을 하고 카페가 쉬는 날만 빼고 정말 열심히, 가족과 친구들의 반대에도 고집스럽게 일만 했다. 화요일과 토요일 격주엔 학교에 가야했는데도 아침 일찍 일어나 빵을 만들고 나서야 등교를 했다. 하교 후에도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 미친듯이 일했다. 가족들이 처음부터 반대했지만 힘들어도 재밌었기에 하루 12시간이 넘는 노동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처음 몇 달은 한달에 백이십을 받았다가 경영 악화로 월급이 줄었다. 딱 백만원. 그것도 제때 받지 못하고 처음엔 며칠, 몇주, 한달이 지나서야 받을 수 있었다. 서로 신뢰가 쌓였다고 생각했기에 그냥 주면 주는대로 받고 생각없이 다녔다.

돈을 벌기보다는 평소에 하고싶었던 일을 하는 현실이 뿌듯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어 행복했다. 하지만, 내가 카페를 다니면서 계속된 부모님과의 갈등의 골은 점차 깊어져만 갔다. 또한 카페 사람들, 한때는 가족보다 더 가까웠던 동료들의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없이 악화되고 행복한 일터였던 곳이 점점 불편하고 스트레스를 주는 곳으로 변해갔다. 분명 즐겁고 행복한 시간도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미치지 않고서야 다닐 수 없었던 곳 같다. 11개월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인생을 함께할 친구들을 얻은 줄로만 알았는데 참 부질없다.

하루아침에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몇 달동안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충격이 다 가시지는 않았다. 인간이 맺은 관계에서 마무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깨닫게 되었다. 처음 떠나보냈던 그 친구의 입장을 생각해보니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땐 몰랐지만 지금에서야 약간은 이해가 갔다. 그 뒤로도 몇명의 친구들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어찌나 까탈스러운 주인이었는지 매 시간마다 바뀌는 기분을 맞추느라 애를 많이 썼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달렸는지 모르겠다. 떠난 친구들을 보면서 깨달아야 했는데. 내 일에 있어서는 객관성이 옅어져 버리고 만다.

지난 11개월은 앞으로 살면서도 잊지 못할 시간들이다. 몸은 고됐지만 한번쯤 겪어볼만한 일이었다. 카페에 대한 로망을 깨부술 수 있었다. 인간관계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한때는 가장 가까웠지만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하더라. 관계에 있어 영원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될 수도 있고. 저번 달에 문자가 와있었다. 아쉬웠나보지. 싼맛에 사람 쓰다가 바꿔보니 본전 생각 났나 보다. 마무리를 깨끗하게 하는 사람이 아닌 걸로 보아 이번 파트너는 얼마나 갈지 궁금하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곁을 떠난 수은 사람들이 이해가는 그 순간이 오겠지.

 

마음고생 덕에 요즘 일상은 평화롭다. 사소한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제 뭐하지?